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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 (요셉) - 중앙교회

Jeanne Grace 0 13005
중앙교회는 "복음으로 샌디에고를 품고,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입니다.  더 복음에 대하여 알고 싶으신 분들은 619-818-7458 또는 http://cafe.daum.net/tcsd 로 연락을 주세요...

제목: 야곱의 축복 (요셉)
본문: 창세기 49: 22 - 26
찬양: 야곱의 축복

창세기 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지난 금요일부터 청년부 수련회를 위해서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청년부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요즘 우리 청년회에 형제/자매님들이 “야곱의 축복”라는 제목의 찬양을 즐겨 부르십니다. 지난 월요일 Martin Luther King Jr. 휴일, 태진 형제님 가정에서 삼겹살 파티 후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자매님들의 힘찬? 목소리로 이 찬양을 전화기를 통하여 들었습니다. 감격스러워 곁에 있는 형제님에게 눈물을 안 보이려 애를 썼습니다. 저에게 선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찬양이었습니다.

오늘 청년회 헌신예배에서 특별 찬양으로 함께 부르신 “야곱의 축복”의 주인공인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살펴 보길 원합니다. 가족을 떠나 고향을 떠난 나그네 같은 우리의 삶에 비추어 요셉은 이민자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당시 강국 애굽에서 총리 대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흉년으로 식량이 바닥나는 가운데 애굽의 식량 원조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이웃 나라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성경의 위대한 인물이며 또한 죄 없이 고난을 받으셨으나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11번 째 아들인 요셉을 축복하는 장면에서 발견되는 시제 (Tense) 를 주목해야 합니다: [1]

These words of Jacob concerning Joseph are to be divided into two parts: what is said in verses 22 to 24 is mainly retrospective; what is recorded in verses 25, 26 is prospective.  This appears from the change of tense: in the first part the verbs are in the past tense, in the second part they are in the future. 

야곱의 축복은 지금까지 행했던 행적을 기준으로 했다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2]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영향력을 끼쳤는가에 따라 그에게 예정될 축복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I. 계속된 축복 (vv.22-24)

창세기 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아버지 야곱은 장자의 축복권을 얻기 위해 같은 시각에 태어난 쌍둥이 형 에서를 속였고 태어 날 때부터 형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남의 것을 빼앗고 악탈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당시 장자의 권한은 첫 째로 아버지의 유산을 나눌 때 2 배를 거머 쥘 수 있었고, 족장으로 리더가 될 수 있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부와 권력을 상징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영적인 갈급함이 앞섰다고 믿습니다.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아버지에게 이어진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야곱의 그 열정은 험한 인생이었습니다: 형 에서의 미움, 쫓기는 목숨의 위협, 삼촌 라반의 속임, 아내를 얻기 위해 14 년간의 수고 등…).

샘 곁에 자란 무성한 가지의 나무처럼 야곱의 하나님 곁에 있을 때 풍성해지고 그 축복이 담장을 넘는 것과 같이 요셉이 누린 축복이 다른 이웃에게 전해지고 더 풍요로와지는 삶을 잘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가족 곁에 있을 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이 풍성했던 것처럼,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곁에 있을 때 그 축복은 넘쳐서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 이웃에게도 끼치게 됩니다. 

요셉의 과거와 현재의 삶은 크게 3 가지로 나누어게 됩니다.

1) 복된 어린시절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 - 창세기 30: 22, 24; 37: 3-7

야곱의 노년 91세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행복한 시절,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시절의 모습을 창세기는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꿈을 꾸고 그 꿈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요셉이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바깥 광야에서 양과 염소를 지키는 목자로 고생을 할 때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게 했으며 집에 남아 곁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의 꿈 (곡식단 열한 단이 절하는 것;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형제들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고 더욱 미워했지만, 아버지인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그 꿈을 키울 수 있었던 복된 시절이었습니다.

2) 축복을 준비한 시절 (고난 받는 종) - 창세기 39: 1 – 40: 23

23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쓸 것을 전해 주기 위해서 고향인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24 Km 와 세검에서 도단까지 105 Km 를 걸어서 갔으나, 아버지의 사랑을 편애로 받아들인 다른 10명의 아들들은 요셉을 살해할 계획을 꾸밉니다. 그러나, 큰 형 르우벤의 제안으로 죽이는 대신에 구덩이에 던져 넣게 되고 유다의 지혜로 이스마엘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그의 나이 17세에 벌어진 불행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인생을 던져진 삶 즉 운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결정하고 변경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섭리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계획 아래 따라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게 됩니다.  아들의 신분에서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고난을 예측할 수 있다면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고난은 예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고난이 아니라 형통함으로 바뀌게 됩니다.

10년 동안 보디발 시위대장 집에서의 노예 생활도 잠시 빛을 보는 듯 했습니다.  보디발의 음식외에는 전부를 위임했고 신임을 했으나, 그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그 감옥에서 두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묵시가 없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은 방자히 행합니다(잠29:18).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유혹을 물리치며 축복을 예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감옥에서 귀중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왕의 떡 굽는 관원과 술을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으나, 해석대로 직권이 회복되어 풀려 나 다시 바로 곁에서 술을 맡은 관원이 된 사람의 기억 속에서 2 년동안 사라져 버린 인물이 요셉이었습니다. 

3) 복을 나누는 넉넉한 삶 (구원을 회복하시는 예수님)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자가 없게 되었을 때 2년 후 왕의 측근에 있었던 술 맡은 관원의 소개로 바로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예정된 은혜였습니다. 

요셉은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움직여 나아가는 삶의 과정을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인생의 마디 마디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창39:2, 21)

바로의 꿈은 2가지였습니다. (창세기 41: 1-8)

첫 번째는 살찐 일곱마리의 소가 풀을 뜯다가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마리의 소가 나타나고 이 소들이 살찐 일곱마리 소를 잡아 먹는 끔찍한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한 줄기에서 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으나 이후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와 실한 이삭을 모두 삼켜 버리는 꿈이었습니다. 

애굽의 술객과 박수들은 꿈을 해석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입니다. 감히 바로 앞에서 불길한 예언을 했다가는 죽음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을 것 입니다. 

그 꿈은 현실로 드러났고 7년 동안의 대 풍년이 찾아왔으며, 이후 7년간 끔찍한 흉작으로 애굽 뿐만아니라 이웃 나라 먼 헤브론에 모여 있던 요셉의 형제들에게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은 총리 대신이 되어 7년 풍작이 들 때마다 소출의 20%를 비축해 놓음으로써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됩니다.  꿈의 해석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 70여 가솔들을 애굽을 불러 내어 구원하고 고센 지방이라는 비옥한 땅을 얻어 이후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게 합니다. 

노예의 신분에서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고, 생명을 나누어 주고 그 축복으로 영향력을 두루 끼치는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됩니다. 이제 그의 나이 30세였습니다. 13년간의 종살이와 감옥에 갇힌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형통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1:1 – 50: 26): 430년 동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심; 가나안 민족으로부터 소수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심)

II. 예정될 축복 (vv. 25-26)

요셉에게 예정된 미래의 축복은 개인적인 측면과 포괄적인 측면에서 바라 보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가 겪였던 13년간의 노예 생활과 감옥에 갇힌 삶에 대한 “과거의 청산과 미래 풍요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요셉의 첫 아들인 ‘므낫세’ 란 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41: 51,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므낫세을 낳으면서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노예 생활과 감옥 살이 13년 간의 아픔과 눈물을 잊게 하셨다.

창세기 41: 52,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애굽에 온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들을 향하여 축복(창 48: 8-9)이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결국, 요셉은 장자들이 받는 축복인 형제들 보다 2배의 상속을 허락 받습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12지파에서 사라지나 두 아들인 므낫세과 에브라임이 이후에 각각 지파를 이루면서 가나안 정복 현장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얻게 됩니다. 두 아들들이 요셉의 몫인 2배 장자의 권한을 축복으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 

두 번째 포괄적인 측면 (우주적인 축복)을 살펴 보면, 그 요셉의 축복이 담장을 넘어 형제와 애굽 및 이웃 국가를 구원했던 것처럼 이후에 온 천하에 가득할 풍요로움의 축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포괄적인 축복은 내리 축복이라고 해야 할 것 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셔서 이삭에서 그리고 야곱에 이르는 축복이 연결되면서 오늘 본문 25절처럼,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 야곱 아버지가 섬기는 그 하나님께서 축복의 근본이시고 생명의 시작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요셉의 삶을 축복하셨던 야곱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도우시고 복을 주시되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를 허락하시겠다고 합니다. 

26  “네 아비의 축복이 …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  계속해서 아버지의 축복… 이 축복을 강조하면서 내리 축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 이어지고 그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또 다시 우리에게 내려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요셉은 죄없는 자가 고난을 받았다가 회복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양식을 얻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 입니다. 

아버지의 야곱의 사랑을 받은 요셉;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예수님

아버지가 도단에 보내는 장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는 장면

장래의 일을 예언하다가 미움을 받음; 미래를 예언하시다 고난 당하심

형제들의 죽이려는 음모; 형제인 유대인에게 죽임을 당하심

은 20에 팔린 요셉; 은 30에 팔리신 예수님

유혹을 받았으나 거절; 사탄의 유혹을 거절

두 죄인과 감옥에 갇힘; 두 죄인과 십자가에 달리심

한 죄인은 살고 한 죄인은 죽음; 한 강도는 살고 한 강도는 죽음

애굽 왕으로 인하여 총리로 세워짐; 왕이신 하나님께서 살리심

애굽의 모든 권세를 잡음;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잡음

형제들을 용서해 줌; 죄인들을 용서하심

창세기 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지금까지의 삶은 또 다른 과거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 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 넓은 포도원을 가진 주인은 담을 넘어간 큰 포도송이를 담 안으로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대로 두어서 나그네들이 따먹고 원기를 회복하도록 했으며, 과부와 고아들이 그 포도를 따서 양식으로 삼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넉넉함을 기억하고 그 풍요로움에 서로 여유로울 수 있었던 그 시간을 떠 올릴 것 입니다.  길 가 딸기 농장에 손을 넣어 몇 개 딸기 알을 입 속으로 넣었던 그 달고 시원한 맛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받은 축복은 담을 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넘쳐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와서 찬양을 통하여 우리가 기쁨을 얻었으면 우리 자녀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 입니다. 내가 복을 받았으면 우리 가족들에게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교회를 멀리하는 아픔을 보게 됩니다. 

지난 금요일, 서로 꿈과 비전을 나누면서 2 가지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울타리와 담이 매우 높았다는 반성입니다. 담장을 넘지 못한 가지, 우리만의 잔치가 아니었나 되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아직도 처음 교회에 오시고 낯선 분들에게 교회는 높은 담을 치고 있었다는 회개였습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와 이상한 몸짓으로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는 자책을 하게 됩니다. 

내 형제/자매 및 동료에게 복음의 축복이 담장을 넘어 전해져야 합니다.  요셉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의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고 그 영향력이 온 천하에 전달 되었습니다.  우리도 가장 큰 축복은 지금까지 함께 하신 그리스도의 복음과 앞으로도 강력한 생명력으로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실 복음의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강 준민 (저서)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를 잠간 나누어 보길 원합니다: [4]

 그러나, 그들이 꿈을 성취한 것은 그들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형통이란 하나님의 기회와 인간의 준비가 만나는 곳에 일어나는 축복의 사건입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면, 꿈꾸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꿈꾸는 사람은 노력할 뿐만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 꿈이 크면 문제도 큽니다.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싸움은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 고난, 역경, 실패, 유혹, 낙담, 좌절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꿈꾸는 자에게 필요합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시간 청년부 헌신 예배 가운데 특송으로 부르신 “야곱의 축복” 이라는 찬양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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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thur W. Pink, Gleanings in Genesis (Chicago, IL: Moody Press, 1992), 338

[2] 김 명선, Genesis: The Easy Way to Master the Old Testament (서울: 진흥, 1998), 218

[3] 이 행보,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 2004년 5월16일, 창 49: 22-26: http://koreanunity.org/church/Korean/

[4] 강 준민,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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