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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즉문즉설 (1) 베를린 “남자를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고민입니다.”

남자를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고민인 20대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재치 있는 답변에 강연장은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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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편입니다. 인생은 짧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면 보여주고, 주고 싶은 게 있으면 주려 하는데 상대방의 마음과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불도저 같이 너무 들이대니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데이트를 하거나 연애 감정을 표현했을 때 한국 남자들은 저한테 무섭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독일에 와서 독일 남자를 만날 때 는 아예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만나보았는데 너무 답답했어요. 저는 그저 좋은 걸 좋다고 표현할 뿐이지, 다른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연인관계로 급하게 가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제가 철이 없는 건가요?”

 

“그건 질문자 성격이에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되긴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청중웃음)

 

“둘이 똑같이 그런 사람 만나면 불붙고 며칠 있다 끝나요.” (청중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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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상대방에게 시간을 좀 더 줘야하는 건가요?”

 

“맞춰야 한다는 거지요. 시간을 주거나 안 주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내가 만약 어떤 여자를 만나는데 그 여자가 나 좋다고 막 덤비면 그게 좋기도 하지만, 겁이 나지 않을까요? 쉽게 말하면 꽃뱀인가 싶어서요. 왜냐하면 나는 상대에 대해서 충분히 모르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않겠어요? (청중웃음)

 

요즘은 옛날처럼 화끈한 남자들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엄마가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을 워낙 통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남자들이 남자답지 못하고 다 쫌생이가 되는 거예요. (청중웃음)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쫀쫀해져서 여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망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거지요. 게다가 독일 사람은 더 냉정하잖아요. 그러면 질문자가 아예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가면 어떨까요?“ (청중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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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브라질 남자들은 저도 무서울 정도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보다 더 적극적인 남자들도 많은 것 같고요. 그래도 그건 너무 다가와서……”

 

“적극적인 면도 있지만 책임감이 적지요. 남미의 스페인 남자들은 남녀관계에 있어서 책임감이 적어요. 예를 들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을 때 남자는 그 아기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요. 그곳 문화가 그래요. 그러니까 둘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는 보통 엄마가 키워요. 아주 자연스럽게요. 모든 자연의 동물들은 누가 새끼를 키우죠?”

 

“어미가 키워요.” 

 

“그렇지요. 새끼는 어미가 키우고 수컷은 신경을 안 써요. 교미만 하고 가버려요. (청중웃음)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이 굉장히 적극적인 반면에 책임의식이 좀 없는 편이에요. 반면 독일이나 영국의 남자들은 가정적이고 책임의식이 강해서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한국남자들은 책임의식이 더 강하기 때문에 겁을 내는 거예요. 이런 경우에는 질문자가 알아서 잘 대응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이런 부분을 유념해서 감정적으로 조금 더 진정하면 되는 건가요?”

 

“그게 잘 될까요? 질문자의 성질이 그런데. 하루 잘 참았다가 다음날 바로 팍 터질텐데.”(청중웃음)

 

“저는 나름 의식을 한다고 해서 자제를 하는데도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고요.”

 

“성질이 그런 것이 나쁜 게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거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나라마다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차이일 뿐이지, 나쁘고 좋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다만 상대가 시간을 원하면 나도 내 감정을 억제하고 기다릴 줄 알고, 상대가 적극적이면 거기에 맞추어 나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되는 거죠. 

 

질문자는 상대가 너무 신중하면 답답하다고 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남자도 여자가 너무 신중하면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요. 연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요. 같이 해야 하므로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내가 맞추려 하지 않고 무조건 다가가면 상대가 부담을 느껴서 도망을 갈 거고, 반대로 너무 천천히 가면 상대가 오히려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의 문제지, 특별히 개선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길은 두 가지에요. 질문자가 그런 적극적인 성격의 남자를 찾는다면 독일에서는 열에 한 명 찾기가 어렵지만 이탈리아에 가면 열에 여덟은 찾을 수가 있으니 에스파냐나 이탈리아 또는 포루투갈이나 그리스로 가세요.(청중웃음) 브라질도 포르투갈 계열이라서 거기도 그래요. 아니면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선택을 하려면 이탈리아 북쪽에 있는 토리노라든지(청중웃음), 밀라노라든지, 베네치아라든지, 이 쪽은 같은 이탈리아인데도 북쪽이라 성질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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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로 성격이 안 맞는 사람끼리 결혼할 경우에 자기를 고집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오래 못가요. 그렇지만 서로 이해하면 성격이 안 맞는 사람이 더 좋아져요. 왜냐하면 한 사람이 정열적이고 한 사람이 좀 이성적이면 이성적인 사람이 정열적인 사람을 안정시켜주고. 이런 두 사람이 서로 화합해서 가게를 운영하면 정열적인 사람은 주로 영업을 하고 안정적인 사람은 주로 행정사무를 담당하고 조화를 맞추면 아주 좋지요. 그런데 만약 서로 자신만을 고집하면 안 맞게 되는 거예요.  

 

반면에 둘 다 정열적인 사람들은 스파크 일어나듯이 열렬히 좋아하다가 얼마 못 살아요. 또 너무 신중한 사람 둘이 같이 살면 사고는 안나는데 삶이 재미가 없어요. 어떤 부부는 평생 언쟁 한번 안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부부들은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부부 간에는 살다보면 가끔은 성질을 내기도 하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고고하게 살면 삶이 행복하지 않아요. 밖에서 볼 때는 이상적인 삶이지만 즐겁지는 않아요. 그래서 둘 다 너무 이성적이면 사고는 없이 살지만 행복하지 않고, 너무 정열적이면 얼마 못 살고 깨지기가 쉬워요. 그래도 괜찮아요. 화끈하게 살다가 깨지니까. (웃음)

 

상대의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자기를 고집하면 진짜 못살아요. 서로 상대방만을 탓하면서 못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오래보고 싶어요.”

 

“오래 보고 싶으면 내 감정을 좀 절제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오래 보는 게 꼭 좋은가요? 확 보고 며칠 만에 헤어지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요? (청중 웃음) 결혼하려고 그러나요, 오래 보는 게 뭐 좋아요? (청중 웃음) 만나서 3개월만 재미있게 지내다 헤어지면 그것도 괜찮은 거잖아요.” (청중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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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감정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가버리면 서운하니까요.”

 

“어쩔 수 없지요.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내 감정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경우는 없어요. (청중 웃음) 다 자기식대로 살기 때문이니까요. 상대가 떠나면 내가 스스로 감정정리를 해야 하는 거예요. 즉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을 받아야 해요. 이것을 소위 명상이라고 합니다. 들뜰 때 들뜸을 안정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억압하고는 달라요. 억압은 막 욕구가 일어나는데 억누르고 참는 것이에요, 즉 억제하는 것인데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하고 싶은 것 못하고 하기 싫은 것 하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수행하는 것과 참는 것은 달라요. 수행이라는 것은 곧 ‘알아차림’입니다. 내가 들뜰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들뜨지 마라’ 이렇게 억누르는 게 아니라 ‘들뜬다’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욕망이 일어날 때도 ‘내가 지금 욕망에 사로잡히고 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거예요. 화가 날 때도 ‘화를 참아야지’ 하고 억누르는 게 아니라 ‘지금 화가 일어난다’ 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일종의 ‘미친 증상’ 이에요. 그러니 화가 날 때는 ‘내가 미친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요.(청중 웃음) 바로 이 ‘알아차림’이 우리 정신 작용 중에 가장 고차원적인 작동이에요. 만약에 내가 지금 낭떠러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거기 낭떠러지가 있는 줄 모르면 떨어져 죽지요. 그러면 나는 ‘죽게 되어있다’ 이렇게 운명 지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저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줄 알면 가는 길을 멈출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떨어져서 죽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자신이 고집 센 줄 몰라서예요. 화를 잘 내면서도 자기가 화를 잘 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내가 약간 좋으면 그걸 표현 못하고는 못 견디는 성격’이 있다고 고백했는데 그런 성질이 올라오면 스스로 통제가 안 되고 그렇다는 거지요. 그럴 때는 ‘또 시작이구나’(청중 웃음) 하고 참지 말고 알아차리세요. 이걸 억제하면 이튿날 터져버려요. 누르면 다음날 배로 커져버립니다. 그럼 상대는 더 놀라게 되겠죠. 그러니 ‘너 또 시작한다. 들뜬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억누르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남이 볼 때는 참는 것처럼 보여도 본인은 억압하지 않고 스트레스 없이 절제할 수 있어요.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은 자기 성질에 끌려가는 거예요. 성질이 나는데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쌓여요.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두 번 세 번 참았다가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최고 세 번 밖에 못 참아요. 그래서 항상 삼 세 번을 얘기하잖아요. ‘보자보자 하니까’ 하면서 세 번째 터지잖아요.(청중 웃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째는 터지게 됩니다. ‘작심삼일’ 하듯이 이 기질을 세 번 이상 못 참아요. 이 성질이 폭발해서 터지면 상대는 더 놀라고 내 성질이 더럽다고 각인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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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참지 말고 ‘알아차림’ 즉, ‘이런 욕심이 올라오는 구나’ ‘이런 짜증이 나는 구나’ ‘이렇게 들뜨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하면 끌려가더라도 ‘아,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억제하지 않는 거예요. 그럼 스트레스가 없어지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개선됩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웃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질문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철없어 보이는 질문일 수 있었는데, 수행이라는 실천적인 방법으로 이끌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그렇다’ 라는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알아차림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간단해 보이지만 매일 매일 순간 순간의 연습을 요하는 것인데, 오늘부터 실천해 보렵니다.”

 

실천의 의지가 가득 담긴 질문자의 표정에 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이 외에도 4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가 28년 동안 요식업을 하고 있다는 여성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독일과 한국 양쪽에서 이방인이 되었다며 희망을 가지며 살 수 있는 말씀을 스님에게 청했고, 미술 전시 기획을 하고 있는 여성 분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교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 남성분은 불교에서는 욕구가 괴로움의 뿌리라고 하는데 욕구가 없으면 목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일과 수행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물었고, 아이를 안고 온 30대 여성 분은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다시 사회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근심걱정을 질문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답변해 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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