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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즉문즉설 (2) 프랑크푸르트 “유학생인데, 수업을 쫓아가기 벅차지만 그렇다고 안주하기도 싫어요.”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74999&page=1&p_no=74

“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여기서 학업을 시작한지 3학기 지났습니다. 수업을 쫓아가기가 벅차지만 그렇다고 목표를 낮추면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면 발전이 없잖아요.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충고나 조언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자의 목표가 뭐에요?” 

 

“제가 배운 공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거예요.” 

 

“배우는 게 뭔가요?”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부인가요, 아니면 석사나 박사 과정인가요?”

 

“지금은 석사과정이고 박사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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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엇이 어려워요?”

 

“가장 큰 것은 언어문제죠. 인문학이다 보니 독일사람 만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많이 부족해요.”

 

“질문자가 언어가 부족해서 여기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게 힘들다고 하면, 노력을 하되 미리 체크해보고 아무래도 힘들다고 하면 미리 그만두는 게 나아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 어려움을 외국인으로서 극복하려면 그만큼 시간을 더 들이고 그만한 노력을 더 해야 하잖아요. 

 

인도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 역사를 배우고 한국말로 논문을 쓴다면 그 사람도 똑같이 이런 어려움을 겪겠지요. 그러니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설악산을 가겠다고 하면, 일단 산이 높으니까 등산화도 챙기고 간식도 챙기고 비옷도 챙겨야합니다.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요. 또 올라가면 다리가 아프겠지요? 그런데 설악산은 오르고 싶고 챙기는 건 싫어서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슬슬 올라가면 어떨까요? 힘들겠지요. 그래서 막 불평을 한다고 할 때, 이게 바로 목표와 현실이 안 맞는 겁니다. 내가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가려면 남산을 가야하고 설악산을 가려면 등산화 신고 장비를 챙겨야 하는 건 물론이고 가다가 다리 아플 것을 미리 각오해야 합니다. 시간도 그만큼 많이 잡아야 해요. 

 

그러니 그건 선택의 문제라는 거예요. 그냥 설악산을 가는 게 좋은지, 남산을 가는 게 좋은지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거예요. 간단하게 가고 싶으면 목표를 남산으로 정하고, 목표를 설악산으로 정했으면 그만큼의 시간과 각오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만약에 준비는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가고 싶고, 산은 설악산을 오르고 싶다고 하면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것 때문에 번뇌가 생기고 고뇌가 생긴다고 말할 수 있어요. 어떤 산을 갈 것인지는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그걸 스님이 대신해 줄 수도, 남이 대신해 줄 수도 없어요. 외국인이니까 언어보다 기술적인 부분이 더 많은 자연과학 분야의 학위는 상대적으로 따기 쉬운데, 역사학의 경우는 언어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경우 학위를 따기 어렵다면 역사 자체보다도 언어에 대해서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잖아요. 거기다 역사 공부까지 해야 하니까 두 가지 부담을 안게 되겠죠. 여기서 ‘언어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데...’ 이런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언어가 약간 부족하다면 역사적인 안목이 탁월하든지, 역사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하더라도 언어가 탁월하든지, 아니면 그 중간쯤이라도 되든지, 이런 것을 선택해야 하겠지요. 해보면서 자기가 언어에 대해서 소질이 있는지, 노력하면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 같으면 포기하겠어요. 저는 언어에 소질이 없으니까요.(청중 웃음) 그렇게 자기가 선택을 해야 해요.”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 선택의 기점을 알 수 있는 표시나 징후가 있을까요?” 

 

“그건 딱 석사까지를 목표로 해서 한번 해보면 되죠. 지금 3학기라고 했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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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앞으로 2학기나 3학기 남았잖아요. 석사 학위까지는 의문을 내지말고 박사까지 간다는 목표를 두고 향후 1년 반을 아주 집중적으로 공부해보는 거예요. 그만둬도 후회 없을 정도로 집중해보면, 나중에 ‘게을러서가 아니라 나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러면 깔끔하게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해요. 반대로 집중적으로 하니까 문리가 터진다는 게 있거든요. 스님이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것이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문리가 탁 터지면 하나로 관통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런 단계에 이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져요. 

 

그러니 일단 일 년 반을 시한으로 해서 석사 과정을 끝내야지 이것마저 할까 말까 한다면 아예 포기하는 게 나아요. 여기에 일 년 반을 시한으로 해서 최선을 다해서 집중했더니 해 볼만하다든지 포기해야겠다든지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고시를 네 차례 다섯 차례 떨어진 사람들도 그만두려니 아깝고, 하려니 막막해서 저한테 질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때는 딱 일 년을 시한으로 정해서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면 돼요. 문제는 그 일 년을 최선을 다하느냐 안 하느냐 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게 돼요. ‘내가 조금만 더했다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미련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나중에 그만둬도 늘 후회가 되는 거예요. 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 이런 게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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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절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야 자기 선택에 대한 후회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러니 정말 집중해서 한번 해봐야 해요. 지금 그만두면 미련이 생기겠죠? 이왕 이렇게 된 거니까 일 년 반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석사를 받고 난 다음 박사 공부가 되겠다, 안 되겠다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게 좋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질문자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었습니다. 답변이 끝난 후 질문자에게 찾아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어제까지 계속 고민한 문제였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마음에 중심이 섰다” 라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스님 말씀대로 집중해서 해보기로 했다”고 하면서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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