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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봉사자 '이평숙 무궁화 노인회장'

중앙일보 0 7515 0 0
한인 노인들의 ‘입’되어
 영어 불편한 사람 대변인 자청
 10년 넘게 선행 자취 감추기도

 
  “글쎄,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다니. 그저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자랑스럽게 떠들 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기 좋은 미국이라지만 한인 노인들이 살기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시민권 취득을 비롯해 병원약속, 건강체크, 약국 가기, 웰페어 해결하기 등등 이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도 많지만 거의 모두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무슨 절차도 그리 복잡한지 자식들이 있어도 저마다 바삐 사는 모습에 섣불리 꼬치꼬치 부탁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내 일처럼 뛰어 다니며 해결방안을 찾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본인도 70을 훌쩍 넘어선 고령의 나이지만 노인 봉사를 자처해 온 한인 여성이 있어 타운에 귀감이 되고 있다.
 바로 출라비스타를 중심으로 샌디에이고 카운티 남부지역의 한인노인 봉사단체인 무궁화 노인회를 이끌고 있는 이평숙 회장(74·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오랜 미국 생활을 통해 영어가 편하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지난 10여년간 어려운 입장에 처한 한인 노인들의 문제를 자진해서 해결해 온 이회장은 ‘한인 노인들의 입’으로 유명하다. 
 그 동안 웰페어를 못 타는 노인들, 곡절이 있어 시민권을 못 받는 노인들 또는 법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 고액의 병원비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도와준 건수가 무려 500여건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이에 어느덧 전문가가 다 되어 웬만한 문제는 어떤 창구를 통해야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회장이 돕기 시작하면 그냥 겉으로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라 해결책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결과를 챙기게 되는 것이다.
 이회장이 이런 봉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바로 본인이 느꼈던 ‘약자의 한’이었다. 1954년 미군인 남편 휴 사이크 씨를 따라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해 시작한 미국생활. 그때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고 게다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당한 수모와 외로움이 깊었던 것. 이후 1961년 샌디에이고로 건너와 30여년이 넘도록 거의 반 미국사람으로 지내오는 이 회장은 이미 언어나 경제적인 면에서 불편함 없이 살고 있었지만 그와 같은 이민 초기의 힘든 생활을 잊지는 못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언어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민자들 특히 노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고 한인 노인들의 불쌍한 사연을 들을 때마다 자진해서 각 기관을 접촉하여 시간과 물질을 써가며 해결해 온 것이다.
 특히 이회장은 이런 봉사를 주변사람이 전혀 모르게 행해 왔기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선행의 자취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법. 그 동안 이회장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구두로 편지로 제보를 해오고 추천하여 외부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시민권을 따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던 노인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간 환자에게 어려운 수술을 받도록 주선해 준 미담, 수술이 급한 부인을 둔 유학생을 도운 끝에 결국은 그들이 변호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왔던 일 등 많은 사연들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주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잖아요. 전 그냥 내가 당했던 고통을 잊지 않았을 뿐이고 나처럼 고통 받는 사람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바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임을 믿고 싶다.
 봉사하는 나날 틈틈이 무궁화 노인회를 이끌며 노인들의 남은 여생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회원들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회장. 형제 자매와 같은 전 회원들이 긴밀히 협조해주고 또한 알게 모르게 돕는 손들이 있어서 앞으로는 더욱 희망적이라고 한다. 
 이회장은 몸이 힘들고 바쁜 스케줄에 정신이 없지만 이 모든 일을 힘 다하는 데까지 계속 해나겠다고 매일매일 새롭게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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