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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물거품된 ‘한 남자의 꿈’...'손도끼 공격사건’ 피해자 한국계 크리스 안귀아노씨

중앙일보 0 7529 0 0
5개월 전 발생한 에스콘디도 시경찰국 사상 가장 끔찍한 살인미수사건의 피해자가 한국계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일명 ‘손도끼 공격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지난 7월9일 심야 시간대에 에스콘디도의 한 주택에 침입한 괴한이 방에 자고 있던 크리스 안귀아노(30)씨를 가지고 간 2자루의 손도끼로 무차별하게 공격한 사건이다.

팔로마 메디컬 센터에서 간호 보조사로 일하던 안귀아노씨는 괴한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고 2개월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극적으로 깨어났지만 두 눈을 실명했고 혼자서는 양치질도 못하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뇌에 손상을 입어 말투도 어눌하고 기억력도 감퇴했다.

안귀아노씨를 공격했던 범인은 사건 직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국경순찰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가말리어 리베라(32)로 밝혀졌는데 리베라는 이혼수속을 밟고 있는 아내와 아내의 남자친구를 해치려는 의도로 아내가 살고 있는 집에 침입했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방을 잘못 찾아 여자친구와 함께 그 집에 세들어 살던 안귀아노씨를 공격한 것.

지난 14일 비스타 슈피리어코트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피해자인 안귀아노씨의 진술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사건발생 전까지는 동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제는 두 눈은 시력을 잃었고 음식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양치질할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한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안 히스패닉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안귀아노씨는 직장에서 항상 솔선수범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해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내년엔 정규간호사(RN) 과정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그 꿈도 물거품이 돼버렸다.

어머니인 이금선(68)씨에게도 안귀아노씨는 착한 아들 그 이상이었다. 늘 “한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욕된 일을 하지 말라”는 가정교육하에서 엄격한 규율도 잘 따랐던 안귀아노씨가 가장 잘하는 한국말도 “네”였다. 금선씨는 이런 아들에게 닥친 불운에 “이게 왠 날벼락인지...”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안귀아노씨가 당했던 고통은 그의 전신에 뚜렷이 남아있다. 16일 기자와 만난 안귀아노씨는 직접 상의를 들춰 상처부위를 보여줬는데 척추를 기준으로 양 옆으로 수차례 나있는 도끼자국과 얼굴은 물론 목 부위에서 어깨까지 족히 30cm는 돼 보이는 도끼 날의 흔적은 그날 밤의 악몽을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사 긍정적이었던 삶의 자세 덕분에 끝까지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안귀아노씨는 “그래도 살아있지 않은가”라며 희미한 미소를 띄우지만 “가족을 이루고 아내와 자녀들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은 이젠 꿈에서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없이 눈물이 난다”고 고백한다.

한편 리베라는 2건의 살인미수, 2건의 고문, 2건의 상해 혐의로 정식재판에 회부됐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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