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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 밝은 아이로 키우는 ‘보물찾기’

sdsaram 0 945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직업에서 손을 떼고 집에만 있자니 여간 좀이 쑤시는 게 아니다. 여유시간이라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 4시간 남짓. 그 시간을 이용해 문화센터나 외국어 학원에 다녀볼 생각도 해보았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 두면 아이 돌보며 남는 시간엔 취미생활이나 하며 우아하게 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쯤 회사 앞마당엔 벚꽃이 만개했을 텐데, 장충공원 분수도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댈 테고, 회사 옆 부추 비빔밥집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겠지?’ 봄을 타는 것인지 사무실 창밖 공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카세트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던 풍경조차 그리워진다. 그때는 고성방가로 신고하겠다며 이를 갈았던 그 정경이 그리워지다니….

주중 내내 봄 날씨 때문에 설렜다가 우울했다가를 반복하다가 주말 아침이면 밥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가족을 몰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외출 명분은 물론 건영이의 체험학습이다. 그렇다고 무슨 사전계획을 세워 놓은 것은 아니다. 그냥 차에 올라탄 후 “우리 강화도 가자!”하고 제안하는 식이다. 무엇이든지 계획을 해야 움직이는 애 아빠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지만 계획 같은 게 뭔지도 모르는 건영이는 내편을 들어 신이 나서 “좋아, 좋아” 소리친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도 길을 못 찾아 헤맬 걱정은 없다. 우리에겐 특별한 네비게이션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자동차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매번 지도책도 없이 토끼 모양의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떠났다. 그것도 출발하기 전에 한번 훑어보는 게 전부. 중요한 도로 이름만 숙지하고는 나머지는 동물적인 감각에 맡긴다. 우리 부부의 감각은 좀처럼 불일치하는 일도 없고 일치한 길로 갔다하면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이쯤에서 우회전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핸들을 꺾었을 뿐인데 원하는 곳이 턱 나타나니, 이를 경험한 친정 식구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인간 네비게이션’이라고 부른다.

길눈 밝은 것도 유전인지 건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길에 대한 기억력이 좋았다. 더도 말고 딱 두 번만 데려가면 웬만한 장소는 100미터 전방부터 알아차린다. 심지어는 2년 전에 갔던 장소에 이르러서도 “아빠 여기 우리 왔던 곳이잖아, 여기에서 엿 사먹었는데… ”한다. 바닷물과 모래 밖에 없는 바닷가도 기억을 해내 우리부부를 놀라게 한다. 어른인 우리도 이 바다가 그 바다인지 분별이 가지 않는데 어떻게 기억을 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공부에도 이렇게 이런 기억력이 발휘되면 얼마나 좋으랴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이런 분야(?)에도 영재가 있다면 건영이는 당연 길 찾기 영재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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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의 습관 하나가 있다. 바로 관광안내소를 찾는 것. 유명지라면 대부분 관광안내소가 있고 그 곳엔 유적지 소개와 주변 관광 명소가 표기된 지도가 있게 마련이다. 종이 질이 좋고 사진 상태도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공짜다. 쓰임새도 많아서 여행 중엔 똑똑한 길잡이로, 여행 후엔 건영이의 근사한 장난감이 되어줄 이것. 한 장이라도 빼놓을세라 꼼꼼히 챙긴다.

알뜰히 챙긴 관광 지도를 펼쳐 놓고 건영이와의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가 여기에서 출발해서 저기까지 갔다 온 거야, 이곳은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곳이고.” 실제로 가 본 장소를 지도에서 찾아보고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은 현장체험이 갖는 매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건영이는 각 명소에서의 에피소드를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 사이 강화도의 또 다른 지도 하나가 건영이의 머릿속에도 그려지나 보다. 얼마 안 있어 건영이는 스케치북에 강화도 지도를 척척 그려낸다. 둥글넙적한 원 그림 위에 드문드문 점을 찍어놓고 명소 이름을 써놓은 것이지만 명소들의 좌우전후 위치는 제법 들어맞는다.

지도 그리기에 ‘필’이 꽂힌 건영이는 내친 김에 보물찾기 게임을 제안한다. 건영이가 어렸을 적에 즐겨하던 보물찾기 놀이는 집안의 어느 한 곳에 보물을 숨겨놓고 그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전개도로 그리면 상대편이 그 전개도를 보고 보물을 찾는 놀이다. 전개도 즉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어 소파를 그린 다음 왼쪽 다리 아래에 점을 찍어두면 그곳이 바로 보물이 있는 장소가 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좌우 개념에 미숙해 왼쪽 다리를 보고도 오른쪽 다리에서 보물을 찾는 경우가 있지만 한두 번 해 보고 나면 금세 익숙해진다.

좀 숙달되면 보물을 묻어둔 곳에 제 2의 보물장소가 그려진 지도를 그려놓고, 제2의 보물장소엔 제3의 보물장소 지도를 그려놓는 식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 이때는 좌우뿐만 아니라 장식장의 위․아래, 침대의 앞․뒤, 위에서 몇 번째 서랍 등으로 다양한 공간 개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더욱 흥미롭다.

보물이라야 겨우 사탕 하나지만 집안 이곳저곳 찾는 재미에 건영이는 어떤 놀이보다 보물을 찾는데 집중력을 보인다. 그리고 찾은 보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간단한 장치를 해두면 금상첨화다. 이를테면 보물지도마다 글자 한 자씩 써두는 것이다. 보물을 모두 찾은 후 지도를 순서대로 펼쳐놓고 나면 한 줄 문장이 만들어진다. ‘넌, 내, 보, 물, 1, 호, 야’ .이쯤 되면 건영이의 즐거움과 기쁨은 최고조에 이른다.

초등학생이 되고나서도 건영이는 가끔 보물찾기의 재미를 찾곤 한다. 하지만 여태껏 했던 식으로는 머리 굵어진 건영이를 만족시키지 못할 게 뻔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기존의 것을 업그레이드 시킨 ‘디카 지도로 보물찾기’. 속옷이 담긴 서랍을 열어 디카로 촬영한 다음, 이것을 컴퓨터에 연결해 모니터에 띄운다. 건영이에게 손가락으로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면 엄마의 역할은 끝. 다음엔 건영이가 추리할 차례다. 가장 먼저 사진에 찍힌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속옷과 양말이 들어 있는 곳임을 알게 되면 평소 엄마가 어디에 속옷을 넣어두었는지 기억을 더듬어야 할 테고, 다음엔 누구의 속옷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론 그 서랍이 있는 방으로 가 서랍장이 있는 곳을 찾아내면 된다. 이 밖에 그릇장, 조리도구서랍, 책장, 창고 등 집안의 수납장은 모두 보물 장소가 될 수 있다. 어른들에겐 사진을 보는 즉시 어디인지 금세 떠올릴 수 있지만, 집안 살림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겐 이것 역시 신나는 보물찾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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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이 밝다고 해서 또는 어둡다고 해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 번 가본 길을 기억하는 눈썰미는 분명 다른 곳 어딘가에서 저도 모르게 사용될 게 분명하다. 친가나 친정 식구들은 건영이의 길눈 밝음이 부모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에 길눈 밝은 부모 아래 길치 자식들이 드물지 않은 걸 보면 양가 어른들의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보물찾기 놀이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보물찾기를 할 때 그림을 관찰하고 전후좌우를 가늠하는 것은, 가 본 길을 기억하는 방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비록 단순한 그림 지도를 읽어내는 수준의 능력이지만 글이 없이도 건영이가 내 마음을 읽어내니 마냥 신기하고 뿌듯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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