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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헛되게 하는 일

갈릴리 0 727

복음을 헛되게 하는 일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특징 중에서 첫 번째는 복음의 유일성이다. 복음은 비슷한 것도 없고, 또한 다른 복음도 없다. 복음이던가, 더 못한 복음이 있을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더 갈고 닦아서 더 나은 복음을 만들 수가 없다. 더 나은 복음을 만들려고 노력하노라면, 곧 복음을 훼손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복음의 또 다른 특징은 사도 바울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누구도 복음의 원형을 변질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이 변질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되는가?

우리는 복음이라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복음을 가지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 또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사람의 기쁨을 구할 때, 그가 전하는 복음은 변질되게 되어있다. 복음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물론 복음이 우리 죄인들을 기쁘게 하는 소식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복음의 알파와 오메가 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는 최초의 수단이요, 또한 최후의 수단이다

이 방법 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복음이 유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이란 어떤 것인가? 물론 이것은 복음이 아니긴 하지만 자신을 기쁘게 할 수가 있고, 또한 하나님도 기쁘게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복음처럼 보이는 것이다

곧 율법을 강조하면 궁극적으로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강조해서 사람들이 그 율법을 지키게 되면 그는 자기 민족과 기쁨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거라고 오해를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율법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어떤 율법을 깰지는 모르기 때문에 기뻐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불안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이 율법을 지켰을 때 기뻐하시지 않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베푼 하나님의 은혜가 변질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자기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던(1:14) 사람이었기에 율법의 강조가 복음의 변질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뒤늦게 부름을 받았으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았고, 먼저 아라비아로 갔었다. 그가 복음을 종교 지도자들에게나 다른 제자들에게서 배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직접 받았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복음은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높은 학문으로 복음을 접근했더라면 그는 위대한 학자는 되었겠지만 발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복음은 듣는 것이고, 들려주는 것이다. 들어서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문제이지, 아느냐, 모르느냐, 곧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다음에 다메섹으로, 또 아리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올라간 뒤 3년 후에 게바를 심방했었다. 그의 방문은 겨우 15일간이었다. 그동안에 복음을 연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러 복음을 전했고, 14년 후에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들이 전한 복음을 제출했었다(2:1-2). 그 동안 자기가 연구한 복음이 아니라, 전달한 복음의 내용을 보고했던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로 받은 복음을 그대로 전했다는 것을 보고한 게 아니었겠는가

사도 바울이 가진 복음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이다. 그런데 유대주의 자들이 그 자유를 엿보고 그 자유를 가진 자들을 종으로 삼으려 했기때문에, 변질된 다른 복음(?)과 싸우는 일에 생명을 내놓았던 것이다. 유태인 크리스천들뿐만 아니라,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조차 유태인답게 살게 하려는 억지(2:14)’가 강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배격하고 은혜의 십자가 복음만을 들려주기 위해서 그의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만약에 누구라도 율법을 지켜서 멋있고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겐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2:21)’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복음을 떠나는 행위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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