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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앙 코너

따르기 힘든 쉬운 복음

갈릴리 0 226

 따르기 힘든 쉬운 복음

 

어린 자녀를 향해서 부모가 '이리 오너라'라고 말했을 때,

어린 자녀는 때로 엉뚱한 곳으로 갈 때도 있지만 그는 결국

엄마나 아빠의 품으로 돌아가 안기는 걸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내게로 오라'고 하신 말씀도 그와 같은 단순한 언어입니다.

멋진 교훈이나 지키기 어려운 계율이 아니라서 자존심이 상할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인간의 자존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쉬운 초청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초청장이 고급스러워야하고, 초청의 글이 세련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겐 예수 그리스도의 멋없이 부르는 초청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그 당시 내노라하는 종교인들에겐 그토록 맥없고

실망스러운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로 오라,

나를 따르라'라는 말은 누구든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내게로 오너라, 나를 따르라'라고 말한다면 혹시 정신병원에서

잘못 퇴원한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겠습니까?

 

또 한편으로는 '오라' 혹은 ' 나를 따르라'라는 말은 종교적 언어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쓰고 이해하는 말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면서 당연히 거절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일상적인 삶의 언어요, 부모와 자녀와 같은 생명 관계 속에선

언제나 친근한 생명의 언어인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방한가운데 두고 부모 친척들이 빙둘러 앉아서 저마다 손을 벌려서

'이리 온'이라고 말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여도 그 아이는

엄마나 혹은 아빠를 향해 넘어질 듯 팔을 벌려서 달려가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어린아이가 맛있는 과자나 장난감을 손에 들고 유혹하는 다른 사람에게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앉아 과자를 먹으면서 혹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나 아빠에게 달려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내게로 오라, 나를 따르라.'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에게나 한 번 던져 본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을 단순하게 알아듣고 자신이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께 그의 삶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사람에게 준 기쁜 소식이요, 복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누가 이 험악한 세상에서 '내게 오라, 나를 따르라'하면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를 따를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누구를 따르는 데는 믿음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는 계율을 따르는 행동의 종교요, 적어도 도덕적 종교입니다.

소위 교주가 어떤 사람인가, 혹은 실존 여부도 그 종교의 필수 요소는 아닙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믿고 따르는,

마치 부모와 자녀처럼 생명관 계이기 때문에 '내게 오라, 나를 따르라'

그분이 실존하신 분이 아니라면, 그 어떤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영원한 것이

못되고 그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도 한계 속에서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되어질게 뻔합니다.

그런데 '내게 오라,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라가 보니

골고다의 십자가 밑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합니까?

그분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그 분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오라,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왜 나를 오라고 부르셨으며,

어디까지 따르라'고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하지 안겠습니까?

단순히 그분의 교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 보니

십자가 밑이었다면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의 눈에도 밝히 보였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인가?

우리 눈에도 밝히 보여져야하지 않겠는가?

어디 그분의 죽음을 보는 것으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에 못 박힌 나머지 그 안에 오직 그리스도만 살아 계신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을 때, '내게 오라,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초청이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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