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앙 코너

- 고 난 -

Lazarus 0 3702
- 고 난 -

고난의 시작도 끝도
하나님이란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다.

선악과 사건과 노아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험하고 불안정한 세상에 살고 있기에
고난은 필연이다.

몇 번의 죽을 고비와 갇혔던 긴 시간과
정신적 육체적 궁핍과 고독......,
많고 많았던 고난의 긴 세월들을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나와 남(들)을 살리고자 하는 처절한 영적 싸움에서 오는 고난(들)이 아니라면
결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난에는,
자연적인 즉 정신적 육체적 부족 과실 죄성......,
에서 비롯되는 고난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살고 살리고자 하는 선교적 전도적 고난이 있다.

전자를 하나님께서도 아시지만 묵과하시는 것은
그런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간절히 찾고 만나게 됨이
고난 이상의 행복이요 보람과 유익임을
잘 아시고 또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된 우리의 고난을 시작하실 리도 또 기뻐하실 리도 없다.

못난 나 같은 존재도
많은 고난의 세월을 지내고나니
이제야 할 수 있는 말은
나처럼 험한 고생 후에야 예수님 믿지 말고
아직 눈과 입과 귀와 허리와 다리가 성할 때,
그리고 주위에서 그나마 예수님을 전해줄 때
예수님 믿고 하나님 자녀 되어 행복하게 사세요
하는 간절한 소원이 담긴 절규뿐이다.

하나님께선 결코 병 주고 약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같이 못난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하는 것보다
천천만만 배 좋으신 분이시다.
못난 부모라도 빵 달라는 자녀에게 돌 줄 리도 없고
일부러 자녀에게 헛된 고생 시킬 모자란 부모도 없다.

고난(생)에는,
성숙(장)을 위한 훈련적 고난과
승(진)급을 위한 시험(test)적 고난과
산물(産物)을 기대하며 자초하는 자발적 고난과
원치 않는 타의적 고난 등이 있다.

혹 성숙한 자가 어떤 고난이든
자신을 성장시키는 거울로 삼겠다는
처절한 각오와 결단이 없는 한
많은 경우 원치 않는 타의적 고난은
고난 후에도 상처와 원망만 남을 뿐
별 덕이 되질 못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들 부모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상
자녀(들)의 전인적 전인격적 외, 내면적 건강과 행복을
누구보다도 기쁘게 생각하시며
자녀된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 도우며
잘 살되 영원히 같이 잘 살게 되기를 바라시는 간절하신 소원으로
독생자 예수님까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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