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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삶 (How to Walk;Do;Speak)

Jeanne Grace 0 9995
제목: 올바른 삶 (How to Walk;Do;Speak)
 (샌디에고 중앙교회 - 9월 7일자 설교문 -
    http://cafe.daum.net/tcsd/HrXf/97 참조)
본문: 시편 15:1-5
찬송: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찬 265) 

시편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편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편 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편 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편 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그 동안 설교의 대부분은 복음과 관련된 메시지였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착하게 살아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교훈 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생명을 건지는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다음은 성령님께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능력으로 올바른 삶을 살게 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을 받으면서 본문을 준비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역 즉 하나님의 일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먼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정 병호님의“정직은 능력이다” 라는 글을 소개합니다:[1]

역사적으로 조선왕조 말엽에는 극도의 부패와 관직을 사고 파는 일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예를 들어, 관찰사는 20만 냥 (1냥 = 3만원, 60억), 고을수령은 5만 냥 (15억) 에 거래가 되었다. 결국 그 돈을 채우기 위해서 공금을 횡령하고 백성들을 착취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뇌물을 바치지도 않고, 부패한 관리를 고발해서 처벌을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천 만 명이 조금 넘었고, 기독교 신자는 약 800여명 정도였으니 비율로 0.1% 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가난한 서민들이었다. 당시는 이 소수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무엇일까? 은사나 직분 혹은 신앙의 연륜이 아니라 “정직”이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 보게 합니다.

시편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다윗도 같은 고민에 빠진 것은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덕적 기준, 윤리와 행동양식을 돌아보면서 과연 그들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되묻고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올바른 삶은 우리가 노력하고 좇아야 하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 해답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본문은 3 가지 올바른 삶의 형태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편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편 15:2 (쉬운번역), “깨끗하게 살고, 옳은 일을 행하며, 마음으로부터 진실만을 말하고,”

3. 4. 5절은 이 세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놓았습니다.

I. Walk – 정직

걷는 것… 걸음걸이는 평상시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즉,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한다는 말씀은 쉬운번역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험 잡을 대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신뢰할 만 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결정하고 선택한 일은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양식 2005년 10월 29일자,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라는 제목의 글에서… [2]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대학의 한 연구원이 1,500 업체의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반 직장인들이 무엇을 상사의 중요한 자질로서 생각하는지가 밝혀졌습니다. 피고용인들은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주고, 사람들을 고무할 줄 알며,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능숙한 지도자를 존경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직함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지키고, 정직하다고 알려졌으며,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를 원했습니다.

의외의 결과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일을 하고 기여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먼저 장막과 성산에 거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답변은 뜻밖에 다릅니다.  먼저 정직하게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디모데후서 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디모데후서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실 때에도 금, 은 그릇이 되는 것보다 잔치에 쓰일 그릇은 깨끗하고 청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겉은 포장되어 그럴 듯 하게 보이나, 똑 같이 힘들고 고된 상황이 되면 그 인격과 본성을 드러냅니다.  꾀를 내고 스스로 지혜로운 자인 척하지만 벌써 그 사람의 인격은 냄새를 풍겨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그릇처럼 정작 중요한 잔칫상에 올라갈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게 됩니다. 외부만 포장이 그럴 듯 해서 물건을 잘못 골랐다가 낭패를 당하기 쉽게 됩니다. 쓰레기 통에 버려지는 쓸모 없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벨기에 브리쉘에 출장을 갔다가 경험한 일입니다. 벨기에 문화와 언어에 대하여 생소했던 저로서는 틈이 나면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마침 안내하던 벨기에 상주 독일직원이 워털루 전쟁터가 현지 공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서 같이 다녀 오기를 권했습니다. 1815년 6월 18일 웰링턴(Arthur Wellesley, Duke of Wellington) 장군이 이끄는 영국/ 네덜란드/벨기에/프로이센 등의 연합군과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의 프랑스군과 벨기에(Belgium) 중부의 한 지역이 워털루(Waterloo) 입니다.

박물관 입구에 위치한 서점에서 워털루 전쟁과 관련된 책자를 고르다가 책 제목, 출판사, 인쇄일자도 같은데 가격표가 다르게 붙어있었습니다. 어느 것을 골라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저에게 저를 안내했던 직원이 서점 주인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습니다.  가격이 낮은 책은 출판사에서 가격을 올리기 이전에 들여 온 것이고, 다른 것은 가격을 올린 후 들여와서 가격이 다르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책은 같은 내용이었고요. 그들의 정직성에 잠시 멍하게 서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직함으로 그 사회를 풍요롭게 가꿀 수 있다고 봅니다.

독일 출장 시 주차장에서 자동차 유리창에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종이쪽지가 있습니다. 주차를 하다가 옆의 차량에 피해를 주었으면 어김없이 자신의 연락처와 이름을 남깁니다.  한번은 독일 슈트트가르트 다운타운에서 음식점에 주차를 하다가 옆에 주차된 Benz 차량의 범퍼를 부딪친 직원은 주차 후 얼른 내려 자신의 명함 뒤에 간단한 메모를 하고는 그 차량의 앞 유리창에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흠집이 난 흔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루를 행복 하려면 목욕을 하십시오.  1주일을 행복 하시려면 새 옷을 사 입으십시오.  3개월을 행복 하려면 말을 타십시오.  3년을 행복 하려면 결혼을 하십시오.  그러나 일평생 행복 하려면 정직하십시오.”

II. Do – 공의

Walk 은 내부적인 일상의 삶에 대한 정직한 삶이라면, Do 는 외부적인 공적인 삶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하고 그 일의 성취해가는 가운데 선하고 옳은 일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행하는 일마다 옳은 것은 양보하지 않고 결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삶의 범위를 넘어 구성원과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딪치는 가운데 어떠한 삶을 경주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편 15:4a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하며 …

공의를 일삼는다는 것은 2가지 병행해야 합니다.

1)  옳고 그릇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망령된 자를 멸시한다”는 뜻은 잘못된 행동을 멀리하고 경원해야 한다는 뜻 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하며…” 라는 의미는 공동체 안의 하나님의 사람의 행동을 본 받고 그 삶을 배워 가야 합니다.

2)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행한다는 것은 결단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잘 잘못을 구분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옳은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손해를 당하고 그에 따른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 아닙니까? 

시편 15:4b …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손해가 나더라도 공의를 세우고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해발 8000 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 산 등반에서 간혹 동료를 남겨 놓고 사지로 몰아 넣은 끔찍한 사건이 종종 보도됩니다. 해발 8000 미터 이상은 산소가 부족하여 Death Zone 이라고 불립니다. 자신도 지친 몸이고 생명을 위협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2007년 8월, 미국인 David Hahn 과 그의 셰르파 (Sherpa – 히말라야 산맥에서 짐 운반과 길 안내를 하는 사람) 는 해발 8,300 미터 지점에서 버려진 네팔 여성 비스타 우샤를 베이스캠프까지 사투를 벌이며 무사히 데려 왔습니다. 그러나 우샤의 등반대는 몸이 아픈 여성 대원을 버려 두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라는 변명은 거짓말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3]

캐나다에서 오랜 동안 살다가 오신 분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겨울에 춥기 때문에 차량이 움직이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적이 뜸한 도로에서 시동이 껴져 버리면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만약, 차량이 정지해 있는데 따른 차량이 만약 그냥 지나치면 살인을 방조한 죄와 맞먹는 처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시편 15:5a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니 …

시편 15:5a (쉬운번역), 많은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 주거나 죄 없는 사람을 뇌물을 받고 억울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 주시는 분들은 없겠지만,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TAX 보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부터 믿음의 사람이 지키고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관도 없고 죄 없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데 급급하여 그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뇌물은 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불의한 자로 만들어야 자신이 의롭게 되는 것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 입니다.  증인은 사건의 행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정확한 증언은 억울한 자를 풀어 주고 정의를 드러내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 설 경우 진실을 거짓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종종 어떤 일에 있어서 사실도 아닌데 마치 증인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일의 결말을 좌지우지 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III. Speak – 진실

“Walk and Do”그리고 “Speak” 말 (입술, 혀)은 우리의 마음을 담고 있어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공동체를 풍요롭게도 하고, 황폐하게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지난 8월 30일, 토요일 조카들 여름방학을 마치고 LA 에 계신 삼촌과 이모님의 도움으로 LA공항에서 샌디에고 집까지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후, 조카는 쇼파에 놓인 신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펠프스 금메달 하나 마이너스예요!”

“펠프스 7관왕 스피트와 타이 신기록 -1”
(중앙일보 2008년 8월 16일자, Section C 전면기사 제목)

“그래 그러면 그렇지!” 그래 맞아 “접영 100미터 0.01초 차이” “우승은 분명 잘못된 거야!” “손끝으로 먼저 세르비아의 밀로라드 차비치 선수가 결승판을 닿은 게 맞아!” 신문을 읽고 보여준 조카의 이야기에 모두들 맞장구를 쳤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이것은 약자의 편에서 동정표에 주고, 정의감까지 가세한 멋진 소식이었습니다. 심지어 펠프스를 정직하지 않은 사람으로까지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우승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자 대회공식기록업체이며 펠프스의 후원업체인‘오메가’에서 사진까지 공개한 때였기에 이상하다 싶어서 그 신문을 펼쳐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문은 2008년 8월 16일자 신문으로 15일 접영에서 우승한 이후 이제 1972년 뮌헨 올림픽 수영 7관왕을 차지한 마크 스피츠 (미국)을 제치고 8관왕 신기록에 -1 즉, 금메달 1개 더 추가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기사였습니다.

진위여부를 살피지도 않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이야기하고 판단하는지 알 수 있수 있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할지도 모르지만, 적당히 아는 것으로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부채질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지도 못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외면한 채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자주하게 됩니다. 본문 3절과 같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혀로 참소 (모함)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정작 본인은 언급도 하지 않은 이야길 만들어서 당사자의 의견인양 소문까지 내는 일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3절 중반절,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친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더욱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라면 그 동무를 믿으면 그 친구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끝까지 믿어 주어야 하는 것 입니다.  더욱이 믿음의 형제와 자매는 가족이며 영원까지 함께할 운명이라면 그 벗에게 행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3절 하반절,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라는 뜻은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해를 끼치는 말을 전하여 상처를 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4] 

야고보 3:9 (쉬운번역), 우리는 우리의 혀로 우리 주님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이 정하님의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이란 글에 두 가지 다른 역할을 하는 말(혀)에 대하여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5]

한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서 한 점 별빛으로 빛나는 말
그 말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일생을 외롭지 않게 살 수가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한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비수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속을 헤집는 말
그 말로 인해 어떤 사람은 일생을 어둡고
암울하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서 3:2 (쉬운번역) 우리는 모두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말에 실수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완벽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몸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친구를 험담하는 어떤 사람에게 세 개로 체로 걸러낸 말들인지 물어 보고 말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 [6]

1)      진실
        (진실인가요? 글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요.)
2)    친절하고 애정이 담긴 말
        (친절과 애정이 담길 말인가요? 물론 아니지요 그 못된 친구의 이야긴 걸요.)
3)    꼭 필요한 말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인가요?  네? 전혀 아니지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에게 그러면 이야기 하지 말라고 나무랐다고 합니다.

시편 17: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시편 17:3 (쉬운번역), “주께서 내 마음을 살펴보시고, 밤에도 나를 조사하셨습니다.  잘못을 찾으려 하셨으나 아무 잘못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다.  나는 입으로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늦은 밤 어두운 곳에서도 우리의 삶을 지켜 보십니다.  우리의 진심을 살피신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교회의 공동체와 세상을 향하여 살아가야 할 것인지 결단하시게 될 것 입니다.

시편 15:5b  …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이와 같이 살아갈 때 그의 삶은 전혀 요동치 않고 형통하며 평탄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거룩한 성전에 살 자가 누구입니까?  주님의 거룩한 산에 살 자가 누구 입니까?  올바르게 행하는 자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인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가르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상시의 걸음걸이와 행동양식 및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말엽에 전체 인구의 0.1% 도 되지 않는 800 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악행을 견제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100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인 25% 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습니다.  교회는 직분이나 신앙의 연륜을 쌓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한 곳이 아닙니다. 액세서리의 하나로 자신을 치장하는 수단으로 교회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른 삶을 어떻게 하여야 살아 갈 수 있는지 교회 공동체에서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살며,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말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하늘 나라의 천국의 기쁨인 평강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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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병호, 정직이 능력이다  - 아침향기 2006년 10월호, p. 12.

[2] Mart De Haan, What Did You Say? – Our Daily Bread – October 29, 2005.

[3] 내 동료들은 나를 보리고 갔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날 구해 줬다. – 아침향기 2007년 8월호, p 18-19.

[4] 구 순옥, 성도의 삶 – 아침향기 2005년 12월호, p. 84.

[5] 이 정하,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 빛나는 말, 아침향기 2006년 6월호, p. 17.

[6] 세 개의 체로 걸러낸 말 – 아침향기 2006년 6월호,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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